나의 대표 강점      Mar.15.11 - PM 13:17:31

KBS 방송에서 연세대 김주환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여러 특성들 중에서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못하는 것을 잘하려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는다. 고 하였다.

- 절제 (신중, 겸손)
- 초월성 (감사, 낙관)
- 용기 (진정성, 인내)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 지혜, 지식 (호기심)
이 부분도 높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Market Fighters Day      Mar.04.11 - PM 18:35:45

오늘 3시에 회사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평창?에 내려 자정부터 6시까지 20km 새벽 행군을 한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IT 이외의 일을 시작했었는데 올해 초 잠깐의 HR 을 거친 후 지금의 사업단에 발령 받았다.
일전에도 변화에 대해서 적었었겠지만 앞으로도 내 삶의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이원희      03.24 22:41
퇴근시간이 바뀌었고, 월화수목금금금이 되었다.
           

 철학에 관하여...      Jan.12.11 - AM 10:41:45

얼마전 마이클샌델교수의 정의란무엇인가 방송을 보고 KBS를 트니 TV특강에서 철학콘서트가 방송되었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 철학이 유행인 듯...
역시 쉽지 않다. 사는 거 보다 철학이 더 어렵다.
보면 볼수록 정의가 헷갈리고, 철학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방송을 볼란다.

- 젊은이에게 -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또는 생각하며) 사세요.
그런 일을 하며 살면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입니다.
(김광식박사)

           

 정진석 추기경 인터뷰 전문 vs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성명서 전문      Dec.13.10 - PM 16:30:12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부제 : 성경을 토대로 살펴본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임금들)

정진석 추기경 책 출간 설명 기자 간담회 인터뷰 전문 (2010년12월 8일)

Q) 건강이 잠시 좋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올해도 책을 냈다.

A) "주님의 은총으로 괜찮아졌다. 하루 1시간 반에서 2시간씩 복도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덕에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이번 책은 이스라엘 통일국가의 왕 3분, 분열된 후 남쪽 왕 20분, 북쪽 왕 19분 등 총 42명의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야 할 하느님의 대리자였지만 하느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우선시 한 경우가 흔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직접 전달할 예언자들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왕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 왕들과 협조하기보다는 대결하는 모습이 많았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면서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려 했으나 쓰다보니 참고할만한 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지도자나 기업체, 학교 등에서 많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성경 속의 왕들처럼 현대의 지도자들은 예언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동양에서 황제는 '천자'라고 해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뜻은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지도자들도 다 백성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실천이 그 말과 같아야 한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다. 백성의 일치된 소리가 하느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민심을 받드는 제도다. 민심이 프리즘을 거치면서 올바르게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민심도 굴절이 되는 수가 있다. 어디서 굴절이 됐는지 올바른 파악을 하는 게 올바른 지도자의 자격 요건이다."

Q) 종교간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데, 갈등 해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A) "긴장이 된다, 저도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종교는 영생을 지향하는 것이다. 불교의 극락도 천당도 영원한 세계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길이고, 그 길을 가면 진리에 이르고, 진리를 얻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천주교에선 생명문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유가 생명이 없으면 이 우주가 이유 없어지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어서 세상에 가장 존귀한 가치를 깨우칠 수도 있다.

진리는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가치다. 진리는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다. 진리를 잃으면 인간이 동물의 수준으로 타락한다. 허위로 일생을 보내는 것은 동물로 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허위로 살면 어두워지고, 지도자가 허위에 얽매이면 백성들이 불행에 빠진다. 진리의 광명을 흐리게 하는 게 인간의 욕망이다. 각자의 욕망이 진리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그릇된 욕망을 극복하고 초월하면 왜 영생을 지향하는 종교계에 다툼이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다행히 종교간 화합이 모범을 보이고 있다. "

Q)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해주고 싶은 말은.

A) "인류공동체라는 점을 자각했으면 싶다. 성탄 때 예수님이 만민을 위해 왔는데 소외받는 사람, 장애인,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때가 오는 것이 구세주가 임하는 때가 아니겠는가. 앞으로 오실 구세주는 모든 인간이 다 행복한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쳐 주러 왔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자와 사자에게 잡혀먹는 동물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세상, 이게 평화라고 했다. 차별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Q) 지도자에게 필요한 예언자의 말은.

A) "백성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생존을 보장해 줘야 한다. 우선 먹고사는 것,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물질적인 혜택이 필수적이다. 사람이 살아야 돼서 그렇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진리를 알아야 한다. 진리를 알려 주는 게 언론매체다. 이를 차단하면 행복할 수 없다. 진리는 자유를 요구한다. 생존, 진리, 자유, 이 세 가지의 가치를 가능한대로 실현 시켜주는 지도자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지도자다."

Q) 연평도 사태로 인해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생계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데 해주고 싶은 말은.

A) "생존, 진리,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북쪽은 어떤가. 생존과 진리와 자유가 보장되는가. 비관적이다. 지도자는 얼마나 부합되느냐. 백성은 어떤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느냐. 북엔 종교의 자유가 없다. 1949년 북에 가톨릭 신자가 5만5천 명이 있었다. 오늘날은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가톨릭엔 주임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이 있고, 각 본당엔 신부가 순회 사목을 하는 공소가 5개 정도씩 딸려 있었다. 신자는 본당에 500명, 면 소재지에 있는 공소에 100명씩 있어서 한 본당당 1천 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1949년 5월 성직자 수도자들이 일시에 행방불명됐다. 개신교에서도 목사들이 안 보이게 됐다. 1980년 적십자를 통해 그때 성직자 수도자들이 생사를 알려달라고 했다. 대답이 없어 두 번을 물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대답이 없다. 그 이후 북엔 성직자나 수도자가 한 명도 없다. 신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파악할 수 없다. 개신교는 몰래 세례 주려고 노력한다. 북은 생존하려 양식을 얻으려 손을 벌린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차단하고 있다. 자유가 없다.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백성의 탓은 아니다. 연평도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로해주시도록 기원하고 있다. 시련을 극복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선의의 자원봉사자들은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들이다."

Q) 4대강 개발에 대해 가톨릭에서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데, 예언자가 온다면 4대강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A) "주교단이 4대강 사업이 자연을 파괴하고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는 안했다.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발하라는 적극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느님이 지구를 하나만 만들었다. 창세기에 보면 사람이 자연을 이용하고 다스리라고 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생물을 지배하는 권한을 준 것이다. 지구를 개발해서 활용하라는 것이다. 자연을 100% 보존하는 것과는 다르다. 개발을 하는 게 파괴냐, 그것은 같지 않다. 사람이 갖고 있는 재물, 지구자원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후손들도 지구 자원을 활용해나가야 하니까 지구환경을 보존하면서 활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4대강 개발도 발전을 위한 개발은 무난하다. 파괴를 위한 개발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건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문제다.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계는 발명품이다. 노벨이 화약을 개발할 때 폭탄을 만들라는 뜻으로 만든 게 아니다. 모든 발명품은 선용하기 위해서 만든다. 원자력도 성인이 활용하면 좋고, 악인이 사용하면 지구를 파괴한다. 식칼도 요리사에게 필수도구지만 강도가 가지면 살인도구가 된다. 반대하는 것은 악용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4대강 개발은 믿음의 문제지 그 자체가 선이나 악이 아니다. 4대강이 올바로 개발되느냐 안되느냐는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영산강은 제대로 간다고 하지 않느냐. 그게 한가지 결과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Q) 추기경님이 대사회적 발언을 자제하는 이유는.

A)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정치분야는 정치가들이 밤을 새고 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문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가 알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Q) 사회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문제시 되고,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A)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할 때 암수로 만들었다. 암수가 정상이다. 동성애는 정상이 아니다. 일부가 감기가 들었다고 모든 국민이 감기에 걸려야 하는 것이냐.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해줘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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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성명서 전문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코린 15,26)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1. 우리는 평생토록 사목에 헌신하다가 이미 사목 현장에서 물러났거나 조만간 은거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노년의 사제들입니다. 우리는 지난 12월 8일, '4대강사업'과 관련한 서울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말씀을 들으며 서글프고 안타까운 심정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신앙의 책무로 알고, 세상 만민에게 봉사하며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제의 신원과 사명을 생각할 때 매우 부끄럽고 비통하였습니다.

   사제단의 충정을 지지한다.

2. 우선 이 문제에 대해 사흘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한 성명서의 취지에 지지와 동감을 표하고자 합니다. 부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헌신해온 이 젊은 사제들의 충정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견을 제기하였다고 하나 이는 사회의 일각에서 오해하듯이 장상에 겨냥한 비난이나 반박으로 볼 일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교회공동체를 향한 그들의 사랑과 헌신의 열정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4대강사업은 중단되어야 맞다.

3. 우리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은 국론을 크게 분열시킨 4대강사업에 또 하나의 의견을 보태고자 함이 아닙니다. 물론 저희로서는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평화를 위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교황들의 거듭된 가르침에 성찰할수록, 재앙을 경고하는 대다수 환경토목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우려와 반대를 참고하더라도, 혹은 주교회의의 가르침 외에 이웃종교들의 일치된 염원을 보더라도, 더구나 소신공양으로 공사 중지를 애원했던 불교의 문수스님과 그 이전에 장장 4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초인적 오체투지순례로 생명평화를 호소했던 성직자들의 기도를 기억하더라도, 또 이미 드러난 자연 파괴의 참상만 보더라도 4대강사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 추기경의 과오는 한국천주교회 전체의 실책이다. 우리가 사죄드린다.

4. 우리는 서울교구장 발언 파문을, 교회공동체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무엇인지 재확인하고, 그 동안의 삶을 뉘우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의 애끓는 호소와 세상의 아픔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정추기경의 오류를 한국천주교회 전체의 실책으로 여기고 함께 뉘우치며 회개합니다. 아울러 이번 파문으로 상심하고 번뇌에 시달렸을 모든 분들에게 용서를 청하고자 합니다.

   정 추기경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용서를 구하셔야 한다.

5. 개인의 견해가 다를 때라도 주교회의 전체의 합의와 결론을 존중하는 것은 교회공동체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런데 주교회의의 구성원 가운데 하필 교회공동체의 일치와 연대를 보증해야 할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킨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문제입니다. 동료 주교들에게 그리고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 교회의 모든 지체를 향하여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소통와 연민은 사목자의 기본 덕목

6. 주교는 자신 역시 교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자, 수도자, 사제들과 더불어 우정을 나누는 벗이 되어야 합니다. 양들과의 소통은 주교의 기본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주교가 교구사제들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흔히 독단을 자행하거나, 사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교회공동체의 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의 공정성을 제한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 본연의 공동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용산참사의 비극이나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불안에는 눈을 감고, 총리와 장관 같은 정치 권력자들에게만 환대의 문을 열어주는 차별과 불통은 불의한 세상과 이익을 나누는 크나큰 잘못입니다.

   은퇴를 앞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7. 교회공동체가 탄생한 자리는 예루살렘 성문 밖,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신 갈바리아 언덕 그곳이었습니다. 그런 희생과 죽음의 현장이 바로 성체성사와 기도, 전례와 영성의 고향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와 거리를 두고 성당의 담장 안에서만 읊조리는 기도는 한낱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이 세례를 청하러 왔을 때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서 보여라!"(마태오 3,7) 했던 세례자 요한의 질타, 왕과 벼슬아치들의 위선을 엄하게 꾸짖던 예수님의 책망과(마태오 23장), 특히 성전을 정화하시던 예수님의 분노와 슬픔이 오늘날 어디를 향해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울부짖음의 현장이 바로 종교의 영역, 사목자가 설 자리다.

8. 높은 담장의 보호 속에 안주하는 순간 사목자는 하느님의 길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아직 하느님을 알지도 못했던 히브리 노예들이 신음하고 절규하자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고 과감하게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길'(탈출기 3,7-8참조)을 '인간의 길'로 특히 사목자의 길로 삼아야 합니다. 백성들의 고난과 울부짖음보다 더 순수한 민심은 없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격언에는 고통 받는 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더불어 애통해하신 하느님의 연민(compassion)이 담겨있습니다. 피조물과 백성이 울부짖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종교의 거처가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의 영역을 운운함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는 핑계를 지어내고 결과적으로 엉거주춤한 중립지대로 피하는 태도는 신중할지언정 사랑의 자세가 아닙니다. 일찌감치 종교권력의 이러한 양태를 내다보신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레위와 사제가 못 본 척 하더라" 하셨습니다.(루카 10,30-32 참조) 우리는 입으로만 사랑을 가르칠 뿐 약자들의 절망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유익을 돌보는 교회의 이중적인 처신에 너무나 시달려왔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원로사목자라고 부릅니다만 부디 후배들이 선배들의 한탄과 회한을 반복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천만다행으로 용산참사의 경우처럼 오늘날 많은 사제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4대강의 생명을 지켜내려는 활동가들과 함께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백성의 시름을 애처롭게 여기고 지배층과 권력자들의 욕망과 교만을 당당하게 꾸짖다가 끝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당부한다. 서로 치유해주면 기도하자.

9. 교회공동체의 역사는 무수한 오류와 실책, 그리고 죄악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 역시 성인들의 교회가 아니라 죄인들의 교회라는 점을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맙시다. 위기가 아닌 시대가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죄와 허물들을 보노라면 가슴 아프지만 교회의 줄기찬 생명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교계제도는 교회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더 넓고 깊습니다. 특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지체를 이룬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깨달음을 심화시켜야겠습니다.

   외곽에 서서 그저 교회를 비관하거나 냉소하는 방관자가 되도록 허락받은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냉담한 마음가짐이야말로 교회 공동체의 건강을 해친 악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히려 누가 잘못을 범하면 이를 공동의 허물로 여기고, 그런 일로 생긴 다른 지체의 상처를 기꺼이 돌보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미리 아시고 책망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이런 배려와 혜안이 교회의 참 덕목입니다. 우리 다 같이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교회의 어려움을 치유하고 극복해나갑시다.

   날치기로 처리한 친수구역활용특별법은 무서운 악법이다.

10. 이번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에 얹혀서 통과된 친수구역활용특별법은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악법입니다. 4대강 예산 22조원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민생예산이 줄어들자 그 중 8조원을 수자원공사사업으로 돌렸는데, 수자원공사의 적자를 보존해 주기 위해서 4대강 수변에 위락시설과 선착장을 개발하도록 특혜를 주려는 악법이라는 점도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하느님, 정의와 평화를 이룩해주소서. 저희가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맑은 눈과 양심을 주소서. 정직하게 살게 해 주소서. 아멘.

   2010년 12월 13일

           

 SKMS 실천 워크숍 강의      Nov.24.10 - PM 17:29:48

요즘 매일같이 이화여대로 출근을 한다.
22개 팀 워크숍 진행을 맡게되어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긴장과 떨림이,
점점 보람과 설램으로 다가서고,
나중에는 피곤함과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을 즐기기를 바라며,
앞으로 또다른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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